강릉 오죽헌은 한 예술가의 탄생지이자 조선 사회의 가족 제도와 여성의 삶을 함께 보여주는 공간이다. 신사임당이 결혼 후에도 친정에서 살았던 이유를 따라가다 보면 그 시대 사람들이 살아가던 방식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신사임당이 친정에 머물렀던 이유를 통해 강릉 오죽헌에 담긴 조선 여성의 삶에 대해 알아보자.

친정에서 이어진 특별한 삶의 선택
강릉 오죽헌은 집 뒤뜰에 줄기가 검은 대나무인 오죽이 무성하게 자라 붙여진 이름의 집이다. 이곳은 신사임당이 태어나고 성장한 공간이자 그의 어머니 이씨가 평생을 살았던 친정이었다. 조선 시대 여성은 결혼과 동시에 시댁으로 들어가 생활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신사임당의 가정은 그와는 다른 선택을 했다.
신사임당의 어머니는 무남독녀였고 집안을 이을 아들이 없었던 상황에서 결혼 후에도 친정에 머물며 가계를 지켰다. 이러한 선택은 조선 시대에도 완전히 예외적인 일은 아니었다. 특히 지방 사대부 가문에서는 집안의 사정에 따라 딸이 친정에 거주하며 부모를 봉양하는 경우도 존재했다.
신사임당은 이러한 환경 속에서 자연스럽게 외가에서 성장했고 이는 그의 삶의 방향을 결정짓는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 친정은 단순한 거주 공간이 아니라 삶의 중심이었고 가족의 기억이 쌓인 장소였다.
결혼 이후에도 신사임당은 오랜 시간 친정에 머물며 노모를 봉양했다. 그가 한양 시댁으로 떠나며 눈물로 시를 남긴 이유 역시 이 깊은 정서적 유대와 무관하지 않다. 신사임당에게 친정은 떠나야 할 공간이 아니라 끝까지 지키고 싶은 삶의 터전이었다.
오죽헌이 길러낸 예술가 신사임당
신사임당의 예술적 재능은 오죽헌이라는 공간과 떼려야 뗄 수 없다. 오죽헌이 자리한 강릉 북평촌은 동쪽으로는 바다가 펼쳐지고 서쪽으로는 대관령이 병풍처럼 둘러싼 곳이었다. 이러한 자연환경은 어린 신사임당에게 풍부한 감각과 관찰의 기회를 제공했다.
집 마당에는 늘 꽃과 나무가 있었고 작은 풀벌레와 곤충들이 일상의 일부로 존재했다. 신사임당은 자연을 스쳐 지나가지 않고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식물의 형태와 곤충의 움직임을 세심하게 관찰하며 눈과 마음에 담았고 그것을 그림으로 옮겼다.
그렇게 완성된 작품이 바로 초충도다. 꽃과 오이 풀벌레와 나비처럼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재들이 그림의 중심이 되었지만 그 표현은 매우 생생했다. 이는 자연을 단순히 아름다운 대상으로 본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존재로 인식했음을 보여준다. 그의 그림은 여성의 예술을 낮게 평가하던 조선의 사대부들마저 감탄하게 만들었다. 특히 묵포도도는 단순한 먹의 농담만으로도 풍성한 생명력을 표현해낸 작품으로 신사임당의 예술 세계를 대표한다.
현모양처를 넘어 조선 여성의 또 다른 얼굴
오늘날 신사임당은 율곡 이이의 어머니이자 현모양처의 상징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이미지는 그의 삶 전체를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신사임당은 훌륭한 어머니이기 이전에 뛰어난 예술가였으며 자신의 재능을 스스로 갈고닦은 창작자였다.
그의 삶을 단지 이상적인 어머니의 모습으로만 바라본다면 오죽헌에 담긴 진짜 이야기를 놓치게 된다. 신사임당이 예술가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당시 조선 사회의 분위기도 작용했다.
조선 전기에는 여성의 활동이 후대보다 비교적 자유로웠고 가정 내 교육의 역할이 컸다. 또한 친정에서의 생활은 가사와 시댁의 규범에서 일정 부분 벗어나 창작과 학문에 몰두할 수 있는 시간을 가능하게 했다.
강릉 오죽헌은 단순한 문화재가 아니다. 이곳은 조선 시대 여성의 삶이 반드시 한 방향으로만 흘러가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공간이다. 신사임당이 친정에 머물렀던 이유는 가족 제도와 효의 실천이자 동시에 자신의 삶과 재능을 지켜낸 선택이었다.